우리 인간은 정신이 없고,
약간 과체중인 경향이 있으며,
일을 미루고,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략)
결정적으로, 인간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인간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
인간관계를 살피다 보면
‘자신의 합리성을 의심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을 흔히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쉽게 무너집니다.
할인한다는 이유로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
열심히 손익을 따지다가도
극단적인 투자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행동경제학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1978년 ,Herbert Simon"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라는 관점을 가지고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성에 대해
비판을 한 최초의 사회학자가
Herbert Simon(허버트 사이먼, 1916~2001)입니다.
사이먼의 주장은 심리학과
경제학이 결합하는 ‘행동경제학’을 탄생시켰읍니다.
사이먼은 이런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읍니다.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에 심리학을 도입한 학문입니다.
인간이 주어진 정보 안에서
항상 최선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실증적 사례로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읍니다.
이로써 300년 정통경제학의
기본 프레임이 무너져버린 것 입니다.
그렇다면 행동경제학은
불과 40년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학문 분야로 이해해야 할까요?
행동경제학의 시작점을 탐색하기 위해
우선 개념적 정의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행동경제학의 개념적 정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경제학 이론에
적용하는 학문”(Camerer, Lowenstein, &
Rabin, 2004)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 사회학, 문화학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입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 하는
이기심을 갖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인간이 알고 있는 정보가 완전하며,
상황을 반복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이론을 펼쳐나갔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일부 개인은 비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결과가 나타나며,
만약 비합리적인 결과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외부 요인의 영향으로 인하여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들을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보았고,
실제로 이러한 관점의 경제학은
20세기 이후 세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 경제학의 이론에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며
등장한 새로운 경제학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심리란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 없으며
때때로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입니다.
합리적 선택이론은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비합리적인 심리 특성들은
언제나 논외로 다루어집니다.
합리적 선택 이론가에게
비합리성에 근거한 경제 행위들은
합리적 선택의 귀결 지인
‘균형상태(equilibrium)’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불안정한 현상
이로 간주할 뿐입니다.
허버트 사이먼이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유는
바로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간과하였던
제한된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인간(=의사결정자)을
다루었던 점을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행동경제학의 시작이
언제였겠느냐는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허버트 사이먼이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연구한
최초의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인간의 비합리적 심리 현상을
경제이론에 적용한 학자 역시 사이먼이
역사상 최초였을까요?
인간의 경제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심리 특성을
강조하였던 최초의 학자는
바로 "애덤 스미스"로 밝혀졌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의 능력을 전파함으로써
합리적 의사결정을 전제로 하는
주류경제학의 시장이론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비록 국부론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17여 년을 앞서 오히려 국부론 저술에
영감을 준 저술이 있었는데,
그 책이 바로 "도덕 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경제적 행동은
다양한 심리적 감정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
이러한 심리적 감정들은
이성적인 마음가짐으로
진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전통적 경제이론과는 다르게
경제 행위를 결정하면서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주장함으로써,
앞서 정리한 행동 경제학의
개념적 정의와 흡사해졌습니다.
또한 스미스는
“동일한 양이라면 만족보다는
불만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행동경제학을 대표하는
‘위험회피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18세기의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제학자들은
20세기 초반에 다시 등장합니다.
1910년대의 제도경제학파(institutionalists)는
경제이론 연구에 있어서
심리학 이론 및 개념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이 심리적 요인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경제 행위를 설명하는 데 있어
핵심 요인으로 간주하였던
‘제도’의 성격을
‘독립된 심리적 개체’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초기 제도경제 학자들에게 있어서
제도의 개념적 정의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다양한 제도의 개념 중에서
습관적 사고(habits of thought)와 같은
인간의 심리적 요인을 강조하였습니다.
인간이 사고를 하는 데 있어
습관적 특징은
현대 행동경제학을 대표하는
비합리성 요인 중 하나인
‘휴리스틱 특성’과 연결되기에,
초기 제도경제학파의 사상 역시
행동경제학 발전 역사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또한 초기 제도경제학파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거시경제학자로서
어빙 피셔(Irving Fisher)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도
인간의 심리를 거시경제 현상의
주요 설명 배경으로 사용하였던 점에서
행동경제학 역사를 정리하는 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피셔는 1928년 화폐착각(The Money Illusion)을 통해
경제 주체들이 화폐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로서
비합리적 심리 특성을 지적하였고,
케인스는 소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경제적 행위는 언제나
합리성에 기반을 두기보다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심리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위해 시작한 것은
1958년경으로 확인됩니다.
즉, 1978년 사이먼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 직전의
20여 년 동안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도
공식화되면서
초기 행동경제학의 학문적 기틀이
마련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많은 학자는
이 시기의 행동경제학을
구행동경제학(Old Behavioral Economics)이라
부릅니다.
이후, 1950년대의 구행동경제학 시대를 넘어서
곧바로 ‘신행동경제학
(New Behavioral Economics)’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구(舊)행동경제학과
신(新)행동경제학의 차이점은
앞서 언급한
인간의 비합리적 심리 특성 요인을
경제이론 모형 내에서
설명할 수 있느냐의
유,무로 나누어집니다.
즉, 구행동경제학에서는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심리 특성’
(지금부터 전문 용어인 "어나 멀리" 표현)이
경제이론 모형 내에서는
설명되지 못해
경제학자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신행동경제학에서는
어나 멀리 경제이론 모형 내로
끌어들여서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을
소위 ‘경제학적’으로 규명하고,
이러한 시도는
많은 경제학자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행동경제학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는
실험 경제학입니다.
기존의 경제학 연구는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효용함수 및
수학적 모형에 기반을 두어
결과를 도출해 내며
실증분석 역시
이미 확보된 수량 정보를 수집하여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을 따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합리성을 전제로 한
기존의 방법론을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행동경제학 연구에 적용하기는
부적합하였으며,
그 대안적 방법론으로서
심리실험이나 자연과학실험과 같이
피실험자의 행동과 반응을
직접 관찰하는 방법이
경제학에 접목되었습니다.
<끝맺으며>
행동경제학이 발전해 온 과정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성찰하는
긴 과정처럼 여겨집니다.
주변의 세상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면서도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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